그동안 귀찮아서 미루고 미뤘던 나인솔즈 감상 겸 후기를 드디어 정리해서 적어 보련다.
사실 나온지 벌써 1년쯤 된 게임이고, 줄거리에 대해서는 이미 만 천하에 다 까발려진 상태라 이 포스트에서는 굳이 게임 줄거리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렇기에 내가 여기서 적고 싶은 건, 이 게임을 하면서 내내 느꼈던 아쉬움과 약간의 불쾌함, 그리고 비판점에 대한 것이다.
나인솔즈 한 줄 요약: 도교뽕 먹은 제작사의 도교천국 과학지옥 교리 전도 게임
딱 까고 말하자면, 빨간 양초 게임즈....아니, 레드캔들게임즈가 나인솔즈를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그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극단적이고 촌스러워서 플레이를 하는 내내 만약 그럴 수 있는 선택지만 있었다면 제작사 의도와는 정반대로 드리프터 꺾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과학 = 악, 종교 = 선이라는 이분법적인(무지개젠띠지구평평이들이 맨날 나불대는 그거 말고) 전제 하에 서구적인 합리성과 과학지상주의에 매몰되었던 자신을 반성하고 신비로운 동양 사상과 종교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동양 종교의 우수성을 간접 체험...일 것 같겠냐고 얶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ㄲ
나인솔즈 스토리만 간략하게 놓고 보자면, 나인솔즈에서는 과학 기술을 지나치게 추구함으로 인해 어떻게 파멸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그리고 도교(=종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욕심을 내려놓고 도에 순응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주구장창 이야기하고 있다.
그 옛날, 혼란스러운 봉래 행성에 평화를 가져다 준 영웅 이담. 한평생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왔음에도, 종래에 과학 기술로 인해 사람들이 타락해가는 걸 보고 너무나 절망했던 나머지, 살상 기술을 가진 과학 기술을 모조리 봉인하고는 <도교 믿고 천국가세요>를 전파하는 신비로운 사상가가 되어 버렸다 카더라~ 라는 작중 에피소드와 이런 이담에 대해 작중 인물들과 제작사가 매우매우 애정이 듬뿍 담긴 듯한 묘사를 퍼다 박아주는 건 너무나 노골적이라 제작사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눈치를 못 채는 게 더 이상할 정도이긴 하지.
하지만, 내가 스토리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이담과 무위선언,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양인들의 태도 때문에 나인솔즈 제작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너무나 얄팍하고 촌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이담의 무위선언 이후, 태양인들은 정말로 그 위대한 과학 기술들을 죄다 봉인하다 못해 천시하고, 심지어 그것을 다루는 과학자와 기술자들까지 백안시하는 경향까지 생기게 되어버린다.
아, 거 애가 과학책 좀 읽을 수 있지. <과학은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며 과학을 공부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저 고양이 종족 미개한 수준 좀 보소?
도교의 가르침에 비판점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고... 위대한 영웅 이담이 과학을 폐기하고 도교를 택해서 쭉- 내려왔으니 아무튼 옳은 거임. 그런 거임... 하는 저 광신적 태도... 캬!!
사실 제작사에서도 왜 이담이 과학 기술을 꺼리게 되었는지, 그 합당한 이유를 붙여주려고 노력은 다소 하긴 했다.
이담 자신의 손으로 현실의 핵무기에 해당하는 에너지탄을 개발하여 그것 때문에 전시에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일이 있었던 데다가, 전후에 친구들이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고 추하게 타락하는 모습을 봤다거나 하는 여러가지 일들이 있다 보니 고민 끝에 과학 기술을 내려놓고 자연인이 되어버렸다는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거지.
그리고 지나가듯이 언급되는, 이담이 에너지탄 같은 비윤리적인 살상 무기를 개발했음에도 도교 신도들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그 역사 자체를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지워버렸다는 건... 도교 신도들도 이담이 했던 본질적인 고민은 통찰하지 못하고 그저 영웅과 전통 종교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으로 일관해오는 식의 부정적인 면모가 있다는 건 슬쩍 보여주는 장면이긴 하다.
뭐... 근데, 저거 딱 하나 빼고는 맹목적인 종교 추종에 대한 부작용은 보이질 않고, 나머지는 죄 윤리를 망각한 과학 기술의 파멸적인 측면만 보여주고 있는지라 뭐시기하지.
생각해보면 나인솔즈에서 묘사된 태양인들의 사회는 결국 [영웅 중심주의]로 흘러간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혼원기 동안에는 강력한 국력을 가진 절나라와 그 나라 왕(절통)을 중심으로 결집했고, 태초기에는 봉래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는 이유로 이담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면서까지 그의 사상을 비판 없이 문자 그대로들 수용했다.
그러다가 천화라는 위기가 닥치자, 그걸 해결하려는 듯이 보였던 역공이라는 과학자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자들이 생기면서 사회가 과학 VS 전통 종교라는 양쪽으로 이분화되고 만다.
그 중간 지점에 서서 절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평범하지만 의식있는 태양인들 집단은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절나라이든, 방사단이든, 천도 의회건... 태양인들은 항상 소수의 영웅과 엘리트 집단의 의견에만 의존해온 듯 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스토리중에서 묘사가 되질 않는다.
나인솔즈가 할로우 나이트보다 스토리적으로 후달리는 점이 이거다.
할로우 나이트는 제작진이 노골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 스토리나 주제를 어필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신성둥지와 그 주변 나라들을 탐험하면서, 한 인물(창백한 왕)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들려주고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은 위대한 존재들일 수도 있지만 평범한 일개 주민들일 수도 있다. 한 왕국 내에 살고 있어도 주민들은 맹목적으로 하나의 사상을 좇는 게 아니라, 이렇게나 다양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그 정보를 통해 플레이어들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창백한 왕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그리고 창백한 왕의 뜻을 이을 것인지(A엔딩), 거역할 것인지(B엔딩), 아니면 그 뜻을 넘어 더 높은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C,D 엔딩)
하지만 나인솔즈는 의식을 가진 일반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다원적으로 스토리를 바라볼 여지를 제공하질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과 이담이라는 어떤 영웅적이고 이상적인(그리고 제작진이 추구하는 사상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의 입을 통해 주제를 직설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 점에서 플레이어가 판단할 여지의 꽤 많은 부분을 차단해버렸다.
이런 아쉬움은 예전에 플레이했던 반교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약간 그런 거... 주인공이 큰 죄를 지은 건 맞긴 하지만 그 행동 원리에 어느 정도 참작할 거리가 있었음에도, 제작사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주제 의식에 따라서 주인공을 갱생 불가능한 쓰레기로 한계까지 몰고 가는 듯한 그런 게 보였거든.
할로우 나이트의 세련되고 절제된 스토리 표현 능력에 비하면 레드캔들 게임즈는 아직 흠.....
레드캔들 게임즈가 다음 작품을 만든다면, 반교와 나인솔즈처럼 뭔가를 대놓고 가르치고 전달하기보다는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을 쥐어주는 좀 더 사상적으로 자유롭고 유연한 작품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정적인 이야기만 계속 적어놓긴 했는데, 좌우간 나인솔즈 매우 재미있게 플레이하긴 했다.
거기다 주인공인 예가 매우 꼴리는 털뭉치라는 점도 가산 포인트임. 거의 10년쯤 전에 언더테일을 하면서도 미친 뼈박이 새끼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예는 확실히 박이용 캐릭터가 맞긴 맞는 듯
그러니 나인솔즈에 대해서는 스토리를 너무 깊게 파고들어가지 말고, 그냥 예를 귀여워한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플레이한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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